그림은 화가 자신의 세계관 및 인생관의 한 표현이다. 그림을 통해 세상과 인간 삶의 의미를 통찰하고, 거기에 자신의 견해를 덧붙인다.
말하자면 그림은 화가 자신의
세상 및 삶에 대한 입장천명인 것이다. 그러기에 사물을 보는 데도 자기만의 시각을 가지려고 한다.
누구와도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응시하고, 그로부터 색다른 의미를
추출하고자 한다.
이규홍은 실제보다 강조된 빛과 음영의 관계를 통해 세상을 본다.
빛은 사물의 존재감을 실현케 하는 결정적인 요인이요, 음영은 빛을 더욱 빛답게 만드는 동시에 사물
의 무덤이 되고 있다.
빛으로 인해 그 존재가 알리는 음영은 그 자체가 숙명적이다. 본래는 세상엔 존재하지 않다가 빛에 의해 그 존재가 규명되는 운명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언제나 빛을 거드는 역할을 한다. 그는 바로 이러한 빛과 음영의 현실적인 관계를 통해 그림이 추구하는 환상적인 공간을 확대시킨다.
이와 함께 회색조 또는 갈색조와 같은 미묘한 색채이미지에 의한 독특한 정서를 나타냄으로써 또 다른 형태의 환상적인 공간을 실현한다.
그 공간은 불확실한 가운데 우
리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기묘한 존재방식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것이 무엇인지 분명치 않지만 우리의 감정을 건드리면서 마음 깊숙이 파고든다. 감정과의 교감이
가능한 어떤 불확실한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불확실하기에 환상이 존재한다. 그의 그림에서 말하는 환상이란 현실과의 경계가 애매한 상황을 의미한다.
그 애매한 상황은 정물화에서 볼 수 있듯이 배경을 추상적인 이미지로 설정한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실제와 추상이 만남으로써 생기는 환상적인 분위기가 애매한
상황을 연출하는 것이다. 얼룩이나 번짐 형태의 추상적인 이미지는 현실 공간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것이다.
여기에서 추상적인 이미지는 사실성을 증폭시키는 한편 회
화적인 공간을 강조하는데 기능한다.
실제로 추상적인 이미지가 도입되는 정물화는 현실에서 느끼는 감정과는 다른 환상적인 분위기에 취하도록 한다.
이처럼 그의 작
업은 빛과 음영, 그리고 추상적인 색채 이미지를 통해 세상을 재해석한다.
특히, 빛과 음영의 관계에 관해서는 태양광선에 의해 만들어지는 그 명료한 경계를 부각시키
고자 한다.
(중략)
이와 같은 소재를 선호하는 것은 개인적인 취향이라기 보다는 세계관 및 인생관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을 보는 방식을 달리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것을 아람답
다고 말하기는 쉽다.
그러나 사람들이 눈여겨보지 않는 것들에 관심을 보내고 그 존재에 영속성을 부여하고자 하는 것은 특별한 시각을 갖지 않으면 안된다.
즉, 평범하
거나 하찮은 것들도 저마다 존재이유가 있으리라는 범신론적인 애정으로 보려는 것이다.
그처럼 일반적인 관심에서 벗어나 있는 사물들 역시 이세상을 존재케 하는 하
나의 구성원이라는 인식이야말로 그의 작업이 가지고 있는 알멩이, 즉 회화적인 사실인 것이다.